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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 장애대학생 IT보조기기 활용 수기 수상작 모음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8-01-09
조회
259

※ 2017 장애대학생 정보접근을 위한 IT보조기기 지원사업 수혜 대학생 총 34명 중 22명이 공모한 IT보조기기 활용 수기에서 입상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보조기기, 자립의 또 다른 이름에 대하여’

– 최우수상 –

 

초콜릿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그러나 진열대를 보자마자 어리둥절한 기분에 빠지고 말았다. 종류가 과하다 싶을 만큼 많아서였다. 역시 선택의 폭이 너무 넓으면 바보가 되는 모양이었다. 마치 뭘 먹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거나.” 라는 대답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자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흘렀다. 정확히는 값비싼 제품 몇 가지를 마주하면서부터 그랬다. 가뜩이나 답답한데, 가격까지 을씨년스러우니 구매욕구가 사그라지는 것이었다.

‘비싼 초콜릿은 대개 고급 진 상자 안에 담겨 있네? 얼씨구? 개별 포장도 하는 거야?’

정말 고급을 가장하거나 진정으로 우아한 녀석들은 모두 개별 포장이 되어 있었다. 이름이 어렵고 외국에서 수입된 것일수록 더 했다. 그런데 문득 개별 포장이 나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싶었던 거였다. 상품의 비싼 가격 때문에 불편한 것 같아 사고의 대상을 옮겨보기로 했다.

진달래, 장미, 동백꽃, 안개꽃……. 그러니까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꽃도 초콜릿과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꽃은 개별로서 아름다웠다. 초콜릿처럼 화려하게 포장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포장을 하고, 군집을 이룰수록 빛이 났다. 보통 군집을 이루면 힘을 뽐내거나 위협적이기 마련인데, 꽃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홀로 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않고 멋스러운 셈이었다. 어쩌면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이 ‘군집의 미’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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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받은 기기를 사용중인 진영씨

 

1.

나는 시각장애를 갖게 된 10살 이후로 보조기기와 한 몸처럼 지냈다. 특히 파일만 있으면 음성과 점자로 책의 내용을 출력해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원래부터 글자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적어도 시력을 잃기 전까지는 그랬다. 확실히 10살짜리 꼬마에게 세상은 빼곡한 글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당시에 나는 만화, 게임, 축구 등에 영혼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스타크래프트’는 ‘파리지옥’ 그 자체였다. 유닛들이 마우스 클릭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대단한 사령관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나와 친구들은 코 묻은 돈의 상당 부분을 Pc방에 헌납했다. 나름대로 지역 경제에 기여한 셈이었지만, 부모님들은 그런 우리를 볼 때마다 히드라(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괴물)로 변신하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망막박리와 함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시력은 내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며 ‘밝다’ 혹은 ‘어둡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이 검은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여러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특수학교에 가기 전까지 나는 모든 글자로부터 차단되어야만 했다. 13살에 전학을 갔으니 대략 2~3년 정도를 보낸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점자와 보조기기를 만나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감동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심장처럼 ‘바운스, 바운스’할 지경이었다.

 

2.

대학교에 입학하며 기존에 쓰던 보조기기를 반납했다.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만 대여가 가능해서였다. 그때부터 나는 끝없는 걱정에 시달렸다.

‘이걸 어디서 빌리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보조기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수업을 들으며 내용을 확인하거나 필기를 하려면 점자노트북(한소네)이어야 했다. 음성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라는 것은 “천천히 빨리 와.” 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비싼 물건을 빌릴 곳이 없었다. 사달라고 하는 건 더욱 힘들었다. 20살의 나이에 5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이 부모님에게 얼마나 대단한 무게를 지니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 담당자님으로부터 ‘삼성 SDS’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학생들에게 it보조기기를 지원해주고 있으니 한 번 신청해 보라는 것이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한소네 U2’를 신청했다. 할부로 따지자면 매달 10만원씩 내더라도 무려 50개월이 넘는 가격이었다. 가격을 보면서 문득 내가 녀석의 보조자인지, 녀석이 나의 보조기기인지 헷갈리다 는 생각을 했다.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할 판이었다. 감사하게도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기기를 받을 수 있었다.

 

3. 

나는 대학교를 다니는 4년간 한소네를 매일 10시간 이상 사용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장애학생들의 학습량을 따라갈 수 없었다. 문제는 보조기기의 수명이었다. 점자는 흐물흐물했고, 키보드는 고장 나기 일수였으며, 배터리는 충전기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수리를 보내는 동안 학업을 이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고장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괴로워졌다. 심지어 몇 년 후에는 기존 버전의 기기들을 수리할 수 없게 될 거라고 했다. 비용도 문제긴 했지만, 수리 자체가 불가하다니 기가 막히는 한편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장 난 기기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학생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나는 로스쿨에 가고 싶었고, 그러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을 더 공부해야 할 것이었다.

대책은 단 한 가지였다. 다시 ‘삼성 SDS’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 그것이 시각장애를 가진 대학생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전부였다. 나는 건물주의 자녀가 아니었고, 당장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신청하기 전에 한참을 망설였다. 한 번 받았던 사람이 또 신청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무언가를 갖음으로써 침해하게 될 타인의 권리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며칠간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 신의 뜻, 그러니까 운명에 맡겨보자는 것이었다. 한편, ‘삼성 SDS’가 대상자를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선정해 줄 것이라는 약간의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뻔뻔한 채로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결과는 송구스럽게도 ‘지원자 선정’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에 520만 원짜리 보조기기를 지원받았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520만원은 한 학생을 살리는 데에 쓰였다.

 

‘보조기기’는 장애의 장벽을 낮춘다. 만일 모든 도움을 사람으로부터 받아야 한다면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스스로 설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우리는 모두 사회적 동물이다. 즉,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도움은 관계를 망치고, 여러 차원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무엇을 전제로 관계를 형성하는가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필요하기 때문에 맺는 인연은 얼마나 사람을 상처 입히고 초라하게 한단 말인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은 맞지만 오로지 사람에 기대어 살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조기기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을 훨씬 줄여준다. 이를테면 시각장애인은 기기를 사용함으로써 책읽기, 글쓰기, 인터넷 접속 등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가족이나 봉사자가 맡아오던 역할에 속한다. 장애인과 도움을 주는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이다. 또, 기기는 사람과 달리 사용자가 컨트롤하고 주도권을 가진다.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는 ‘자립’에 있어 반드시 확인되어야 하는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이들이 보조기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낮은 수요에 따라 제품의 값이 너무 비싸게 형성되어서 그렇다. 사회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 중에서도 학업과 관련된 보조기기는 생명과 직결된 보조기기 다음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직업 선택은 곧 학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전공과 동떨어진 직업을 갖게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생은 경제력이 없다. 돈을 벌어 보조기기를 마련하고 그 이후에 다시 학업을 시작하라는 건 너무나 가혹한 얘기이다. 물론 장애인에게도 의무는 있다. 아니,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면, 특히 타인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하다. 바로 은혜를 갚아나가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환대의 문을 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알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되뇌어도 부족한 말입니다. 보조기기를 지원해주신 덕분에 저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상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부터 공부를 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사회로서 제 곁에 서 주시고, 든든하게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함께 살기 위해서 혼자 서는 법을 먼저 익히겠습니다. 당당히 홀로 설 수 있을 때, 사회라는 이름으로 저의 후배와 다른 소수자들의 곁에 서겠습니다. 망설임의 끝에 두 번이나 욕심을 내었음에도 손을 잡아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제가 지원을 받음으로써 혹시 기기를 지원받지 못하셨을 분께도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다만 도와주신 것이 무의미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기기를 볼 때마다 가슴에 새기며 공부하겠습니다.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로스쿨에 가고자 합니다. 힘든 길임을 알지만 법조인이 되어 소수자의 곁을 지키고 싶습니다. 꽃처럼 스스로 서되 함께 있기를 주저하지 않고, 아름다울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