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이미지

[동향] ‘장애인의 천국’은 없어도 ‘장애인의 지옥’은 있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3-02-21
조회
486

0044.gif

미국이 과연 ‘장애인의 천국’일까 ?

나는 유럽이나 일본 등 소위 미국 외 다른 선진국가를 가 보지도 못했고 사실 잘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 나라들의 장애인재활복지환경에 대해서도 제대로 연구해 본 적이 없기에 그 상황을 잘 모른다.
그러나 본인은 미국에서 ‘장애학’과 ‘재활공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본인 스스로 중증장애인으로 미국의 장애인에 대한 지원시스템을 몸으로 경험하였기에 감히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몇가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본인이 미국으로 재활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의 한 신문기사에서 미국에 살던 한국인 장애인이 고국으로 돌아와 살아보려고 귀국했다가 도저히 살 수 없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국은 ‘장애인의 지옥’이며 대신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이야기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 사회의 시스템이 장애인을 아무리 완벽하게 지원한다고 한들 장애인의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이 세상은 아무리 잘해도 천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여전히 신체적 불편을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장애인에게 이 땅에 장애인의 천국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된 표현이리라. 그 재미 장애인에게 한국은 장애인의 지옥으로 여겨졌기에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하면 환경이 월등히 좋은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 같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로,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적인 가치관이 강한 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하면, 빈부차이도 심하고 사회복지 면에서 사각지역이 두드러지게 존재하는, 결코 천국이라고는 불릴 수 없는 사회이다. 그러기에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에 비하면 2류 복지국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장애인복지에 관한 한 미국은 결코 2류가 아닌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며 세계 장애인 복지정책의 선도국임을 자인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장애문제는 인권문제이다.
 
미국이 장애인의 천국같이 여겨질 정도로 장애인을 위한 환경이 발전한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장애인을 위한 사회시스템은 ‘독립생활운동’ (Independent Living Movement) 이라 불리우는 장애인 당사자들에 의한 강력한 시민운동 및 인권운동에 의하여 쟁취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미국의 장애인운동은 인권운동으로서 흑인인권운동과 여성인권운동과 맥을 같이하며 사회적 소수집단(Minority)의 정치 세력화를 추구하는 시민운동의 하나로 발전하였으며 1973년 재활법 508조 개정과 1990년 장애인법의 쟁취로 이어져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인권문제로 제도화시킴으로 장애인 천국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의 탈시설화와 사회통합이 복지시혜 차원이 아니라 인권침해 및 차별금지라는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갖춘 인권문제로 자리잡음으로써 장애인이 일반인과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 및 환경 조성이 그 사회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의 재활 및 사회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공공시설과 대중교통의 접근성 확보, 재활공학보조기기나 간병인의 제공 등이 복지시혜 차원이 아닌 그 사회의 의무사항으로 인식되기에 자연스럽게 이들 서비스공급 체계가 완벽하게 구축되어지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시스템
 
그러면 어느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애인의 천국이라 불리우는가? 그 해답으로 먼저 재활보조기술이 제공되는 시스템을 살펴봄으로써 미국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어떠한 재활보조기술 제품이 필요하면 일단 ‘어느 곳에서 이 구입비용을 지원받을까’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개인이 지불하려고 생각지 않고 정부나 그 사회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어떤 기관에게 청구를 할까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피츠버그대학교 재활과학기술과에서는 대학원 학생들을 위하여 ‘재원마련을 위한 전략(Funding Policy)’이라는 과목이 개설하고 있는데, 이 수업에서는 보조기술센터에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보조기구를 평가하고 처방해주는 임상에 참여하면서 참여한 임상의 케이스들을 놓고 토론을 하면서 각 케이스별로 어떤 기관에 재원을 청구하며 어떻게 재원청구의 타당성을 제시할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재활보조기술 제품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기관은 크게 3군데가 있는 데, 의료보험, 직업재활국, 지역 교육청이다. 이 세군데에서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술제품의 대부분을 지불해준다. 어떤 보조기술제품이 소비자의 건강관리 및 유지에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보험, 직업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는 직업재활국이, 그리고 초중고 학교생활을 위한 경우에는 관할 교육청에서 그 제품을 사주는 것이다.
전신마비로 오랫동안 휠체어생활을 한 소비자에게는 의료보험에서 욕창방지와 근육, 뼈, 관절의 퇴화를 막기 위해 의자가 뒤로 젖혀지기도 하고, 의자 높이를 높일 수도 있을 뿐더러, 휠체어에서 설 수 까지 있는, 무려 4천만원이 넘는 다기능의 전동휠체어도 사준다. 그리고 그 소비자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 직업재활국이 차량의 개조와 특수운전시스템을 위하여 무려 6천만원이 넘는 돈도 지불한다. 그리고 그 소비자의 집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활동하기에 어려움이 없도록 집을 개보수하는데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한다. 그리고 그 소비자가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컴퓨터 대체입출력장치를 사주고 필요하면 특수교사를 붙여주는 등 공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이뿐인가?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도우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하루 24시간까지도 간병인을 제공하며, 버스, 기차, 택시 등 모든 대중교통시설을 휠체어를 탄채로 이용할 수 있고 모든 공공건물은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접근에 문제가 전혀 없다.
 
장애에 대한 인식부터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장애인에게 필요한 휠체어나, 컴퓨터대체입출력장치, 자동차 개조, 집 개조 등을 위한 막대한 비용을 본인이 아닌 사회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바로 장애에 대한 인신의 새로운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를 인식하는 관점은 크게 3가지 형태가 있는데, 첫째는 종교적인 관점으로 장애를 죄의 결과로 혹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둘째, 의학적인 관점으로 장애는 질병이나 외상 등으로 개인의 몸에 생성된 특별한 의학적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장애가 죄의 문제나 수치스러운 문제라고 여기는 비과학적이고 반인륜적인 관점은 제거하였으나 장애문제를 결국 개인이 책임질 문제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운동과 함께 발전한 장애 인식에 관한 새로운 세 번째 관점인 사회적인 관점으로, ‘장애는 각 개인이 가진 신체적 특성을 그 사회가 동등하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함으로 그 개인들이 곤란과 불편 등을 겪게 되는 사회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즉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 문제 아니라, 다양한 신체적 특성의 개인들을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장애문제의 해결책도 너무 분명해진다. 즉 신체적 특성이 다른 개인들도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그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가 그 환경을 바꾸고 그들이 곤란을 겪지 않도록 지원체계를 갖추면 되는 것이다. 즉 장애는 사회가 만든 사회적 책임으로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이 겪는 그 사회적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전동휠체어나 컴퓨터보조장치 등의 보조기술제품의 제공과 집이나 차량의 개보수, 간병인의 제공 등을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건강유지를 위해선 보건당국이, 직업활동을 위해서는 노동부가, 교육을 위해선 학교나 교육당국이, 이들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면 로터리클럽이나 라이온스클럽 같은 사회봉사단체나 자선단체를 통해서라도 그 개인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장애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여 사회가 그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장애인의 천국’은 아니더라도 ‘천국 같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권리인 ‘이동권’, ‘교육권’, ‘건강관리권’ 등 마저도 제공되지 않고, 조금 예산을 책정하면 마치 큰 시혜나 베푸는 것 같이 여기는 한국사회는 먼저 이 장애 인식에 관한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선진 복지국가로 발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직 종교적이고 의학적인 관점으로 장애를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장애문제는 개인의 문제이자 그 가정이 책임질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 이런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장애인은 바로 ‘장애인의 지옥’에서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