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이미지

[동향] 지자체의 보조공학센터 활성화, 이렇게 접근하자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3-02-21
조회
238

지자체의 보조공학센터 활성화, 이렇게 접근하자

 
                                                                                                오도영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연구실장)
 
3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인 그녀가 본 센터를 방문한 것은 작년 초였다. 센터를 방문한 그녀는 아주 수줍은 표정으로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토록 저에게 헌신적인 남편에게 단 한 번도 아침밥을 지어 준적이 없답니다. 혹시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가 주저하며 힘겹게 꺼낸 이야기는 집안의 높은 주방구조로 인해 주부로서 일을 할 수 없어 그동안 늘 남편에게 의지하여 조리와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센터에서는 그녀의 간곡한 바람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리프트 의자를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몇 일후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제가 결혼 후 처음으로 아침밥을 지어 남편을 출근시켰어요.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마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위의 사례뿐 아니라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센터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서른 살이 되도록 외출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방치되어 혀 이외에는 아무런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던 한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컴퓨터 보조기구를 적용, 현재는 가족들과 의사소통과 인터넷 학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근육병 아동은 서기훈련을 위한 보조기구를 사용해 다리 근육강화는 물론 나아가 이제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는 사례도 있다.

보조기구, 장애인의 삶에 활력소
우리는 흔히 보조기구(Assistive Technology Device) 또는 보조공학(Assistive Technology)을 이야기 하면 첨단의 로봇이나 얼마 전 척수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어느 교수의 일들과 같은 하이테크놀로지를 연상하곤 한다. 보조공학은 고도의 기술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단순하고 저렴한 보조기구들이 장애인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제공된 리프트의자는 몇 십만에 불과하며,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적용한 보조기구는 몇 만원에 불과한 트랙볼이라는 마우스 대체 기구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은 생소하게만 들릴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 사회의 다수는 이러한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보조기구 시장규모 10조원
우리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첨단의 의사소통장치와 고가의 전동휠체어로 학문적 성과를 이루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많은 매체에서 보았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생활시설에서 살고 있거나 또는 평범한 재가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농담을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간주하며 지나쳐야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현실이다. ‘시장 규모 10조원에 그 수만 2만5천 가지가 넘는다면…’, 독자들은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조기구는 일반적으로 대략 휠체어, 목발, 흰지팡이, 의·수족 등 대략 대여섯 가지를 넘어서지 못한다. 제법 알고 있다고 해도 열 가지 이상을 이야기하고 또한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조기구는 고작 휠체어나 목발정도로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한 나라의 시장 규모가 10조원이 넘고 그 종류가 수만 가지가 된다고 한다면 믿지 못할 엄한 소리라 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분명히 보조공학 선진 국가들의 현실이다.

복지국가에서 보편화된 핵심 서비스
미국의 장애인들은 직업을 갖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고만 하면 수천만원도 넘는 자동차와 온갖 첨단 장비가 탑재된 하이테크 전동휠체어에 음성만으로 집안의 모든 전자장치와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장비와 보조기구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으니 당연히 믿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은 미국의 장애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일본과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이미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의 역사를 갖고 이미 보편화된 복지의 핵심 서비스이다.

이익이 남는 복지서비스
그러면 소위 복지국가들은 왜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보조기구 서비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직업재활국(OVR)의 조사에 의하면 한 사람의 장애인에게 공적 부조로 제공하는 비용보다 그 장애인이 보조기구를 통해 재활에 성공하고 직업을 갖게 되면, 장애인에게 연금이나 수당으로 지불되는 비용보다 최소 6배에서 많으면 20배 이상의 세금이 걷히게 된다고 한다. 당연히 국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많이 남는 장사(?)이니 수천만 원이 넘는 보조기구를 무상으로 지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심화 또는 신자유주의적 복지 이데올로기의 강화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활동보조인제도를 도입하게 해달라고, 안마사법이 위헌이라고 농성과 시위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복지를 생각할 때, 한 사람의 직업과 자립생활을 위해 파격적인 정책과 예산을 지원하는 선진 국가들의 현실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민간의 실태조사 왜 차이가 나는지
보조공학이 우리사회에서 회자된 것은 고작 3년이 되지 않는다. 보조공학 서비스 기관 또한 전국의 3~4곳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보건복지부)에서 교부하고 있는 보조기구 예산은 연간 15억도 되지 않는데 이 예산조차 집행이 되지 않아 매해 예산이 남는 실정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5년마다 발표하는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로 인한 보조기구 추가 구입비용이 6,400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부에서 무료로 교부했으니 개인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 6,4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하다. 민간기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보조기구 구입비용이 평균 221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정부 실태조사와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없다.

다양한 보조기구에 대한 홍보가 필요
실제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은 가격에 대한 부담과 보조기구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96%에 달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내 보조공학의 수준은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금년 보조공학 활성화를 위한 대통령 보고 및 복지부의 정책 수립 움직임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시작은 늦었지만 빠르게 보조공학과 관련된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보조공학 활성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되어야 할 사안들이 있다. 보조기구 및 보조공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 적극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돈, 돈, 돈… 예산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전제품이나 디지털제품처럼 인식되기에는 보조기구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장애인의 신체적 특성과 욕구에 기반을 둔 보조기구가 어떤 것이 있는지 보조기구의 소비자인 장애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알지 못하면 욕구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비용이 수반되는 보조기구 서비스의 부담으로 인해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공적 부조의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개인이 필요로 하는 보조기구를 직접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은 신체와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수반하는 장애인에게 이중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적 급여액은 미국의 1/2000 수준에 불과하다. 장애인구 및 소득수준을 고려한다 해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 예산의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중심의 정책 수립과 서비스 제공이 요구된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욕구를 수렴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수직적으로 하향되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

정책과 제도, 이용자와 함께 만들어야
이용자 또는 소비자들의 입장과 욕구를 분명히 수렴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정책과 제도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시위와 농성을 불사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시작부터 소비자가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조기구이기 때문에 그들이 참여해서 무엇을 어떻게 서비스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편리하게 보조공학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서비스 기관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 또한 수없이 목도한 사실이다. 지역사회의 자원을 이용하고 지역에 있는 장애인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도록 지역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

선진국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역에 있는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역마다 서비스 기관이 있고, 전국에 8,000개가 넘는 대여점을 운영하여 지역중심의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역밀착형 서비스는 단순히 서비스의 편리성만 제고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조기구의 소비와 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보조공학 시장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선진국가에서 우리에게 주는 의미있는 시사점일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보조공학은 이제 첫걸음을 떼고 있다. 기대가 높은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편리한 세상을 위한 모두의 의지와 공감위에 논의들이 진행된다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차별없는 사회에 진일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 시작인 보조공학의 현장에서 가끔씩 마음에 새기는 잠언으로 마무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커다란 소리로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누군가 깨어 그 문을 열어 줄 것이다.
If you keep knocking at a door, somebody will wake up to open it.(Henry Wadsworth Longfellow )